여행기록

[스크랩] 산티아고의 길을 순례하고 다녀온 도시들(3, 스페인, 마드리드)

이엘리1 2010. 12. 2. 05:33

스페인 마드리드(3)


1.일시: 2010.6.17(목)-6.19(토)(2박3일)


2.교통편: 열차: 포르투갈 리스본.A(22:39)-마드리드CH(08:39)(야간열차)

               산티아고-마드리드

         항공: 인천-마드리드(대한항공 직항),

         고속버스: 산티아고-마드리드


3,숙소: 마드리드 산 퍼민 Y.H(16유로/4인실)

       (T: 34-91-7920897, 예약필수)



파티마 성지 순례를 마치고 리스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다음날 아침 08:48분에 마드리드 차마르틴역에 도착 하였다. 지하철로 숙소인 산 퍼민 유스호스텔을 가기위해 메트로 1호선을 타고 솔역에서 환승 3호선(노란색)으로 예약된 YH에 짐을 맡기고 이틀간 마드리드 관광에서 나섰다. 2층 시내투어 관광버스(17유로)로 시내관광을 하였다.

차마르틴역은 마드리드 시내 북쪽에 위치한 역으로 스페인 각지로 가는 열차 외에도 유럽 주요도시로 출발하는 국제열차와 국내야간 열차가 발착하는 마드리드의 육로의 관문으로 지하철도 연결되어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솔광장-왕궁(파리시오 레알)-알무데나성당-오리엔토광장- 그랑비야의 중심 마요르광장-프라토 미술관 등 주요명소를 돌아보는데 인상적인 건물, 궁전, 공원, 초고층빌딩, 박물관, 패션 등 아름답고 화려한 문화적으로 활기 찬 모습도 보고, 마드리드의 뒷골목도 들어가 주점 안에는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을 흔히 보았다.

마드리드는 이슬람이 스페인을 지배하다 10세기경 당시 수도였던 똘레도를 방어하기위해 성을 쌓은 곳이 바로 마드리드시 가 생기게 된 동기이다. 그 후 1083년 카스탈랴의 왕 알폰소6세가 이를 탈환한 후 1561년 펠리페2세가 이 곳에 궁전을 짓고 수도를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옮긴 곳으로 궁전 등 옛 유적지와 함께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되었다.


왕궁(파라시오 레알)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양식을 혼합한 이 건축물 들은 마드리드 관광의 하이라이트로“옥좌의 방”, “황금의 방” 등 스페인 왕실의 화려한 방들로 1738-1764년에 펠리페5세에 의해 만들어진 왕궁으로 2800여개의 방중에 50여개만 현재는 공개 되고 있다. 현재 왕궁이 자리 잡은 곳은 1063년 그리스도교가 마드리드를 탈환할 때까지 이슬람교도의 성채가 있었던 자리이다. 그 후 왕궁이 되었지만 1734년 크리스마스 때 화재로 많은 미술품과 함께 소실되었고 새로운 궁전의 설계에는 이탈리아 건축가 유바라가 초빙되었으나 착공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 제자였던 사케티가 위업을 물려받아 프란시스코 데 사바티니, 벤투라 로드리게스 등과 함께 1764년에 왕궁을 고전주의 바로크양식으로 건설하였다. 지금은 국왕일가는 교외의 사드수엘라궁에 거처 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 행사가 있을 때 외에는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모방하여 지은 “옥좌의 방”이나 가스 파라니홀, 만찬회장으로 사용되는 대형식당 등 화려함은 극치에 달한다. 왕궁 안에는 고야, 벨라스께스 등의 그림과 함께 2500여개에 달하는 15-16세기 타피스트리(장식천), 200여개에 이르는 시계수집품, 왕궁 약재실, 메달 박물관, 무기, 마차, 음악 박물관 등도 있으며 왕궁 주변에는 귀족 거주 구역으로 넓은 녹지공간을 이루고 있다.


알무데나 대성당


이 성당은 1993년 근래에 지어졌으나 711년 이슬람민족이 이베리아반도를 침입하여 마드리드가 점령당했을 때 파괴를 두려워하여 성벽에 숨겨 두었던 성모님상이 무려 370년 후에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그 자리에 성당을 잣게 된 것이 대성당을 세우게 된 유래가 되었다고 전한다.


마요르광장


솔 광장에서 마요르 거리를 걷다가 왼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마요르광장이다. 1620년에 완성된 마요르광장은 1790년에 화재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다시 건설되었는데 가로 122m, 세로 94m,에 이르는4각형의 광장으로 4층짜리 건물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고  광장 중앙에는 펠리페3세의 기마상이 서있고 외부로 통하는 9개의 아취 문이 있는데 그 중에 쿠치에로스문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선술집이 밀집된 쿠치예로스 거리에 있는 바에서 맥주와 포도주를 마시며 마드리드의 흥청거리는 분위기에 함께하기도 했다.


펠리페3세의 명에 따라 1619년에 건설 되었는데 17-19세기에는 이 광장에서 종교재판, 사형 집행 장, 왕가의 결혼행사장, 멋진 투우경기, 각종공연장으로  다양하고 이채로운 행사장으로 이용 되었던 모임장소이다.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광장에는 테라스에 앉아 오후를 즐기는 어르신들과 젊은이들, 유모차에 어린이와 함께 다정하게 다니는 부부들, 젊은이들의 약속장소로 모이는 이곳은 생동감 넘치고 매력적인 장소로서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로 붐비는 이곳에 그림을 그리거나 채색을 하고 있는 화가들도 볼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


원래 자연사 박물관으로 계획된 것 이였다. 수많은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로스 헤로니모스 빌딩까지 확장되어 있는 프라도 미술관 소장품에는 특히 고야, 벨라스게스, 무리요, 리베라, 스르비란 등에 의한 대작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 곳에는 플란더즈와 이탈리아 예술의 독특한 소장품은 물론, 유럽내 스페인 제국시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1819년 스페인 왕실의 수집품들을 중심으로 개관된 이곳은 19세기말 국가 소유로 이관 되면서 다른 미술관의 소장품 들을 기증받고 자국 예술품 이외에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유적의 상당부분도 전시되어 있으며, 미술관이 있는 세 개의 현관문은 고아, 벨라스게스, 무리요의 조각상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미술관에는 회화작품 8000점 이상이 전시되어 있어 미술관으로는 세계의 최대이다. 12-19세기의 주요 미술품들 중 주로 초기 네델란드와 프랑스 회화, 스페인회화, 이탈리아회화의 작품들이 대다수 차지하였다. 전시관 입구는 북쪽의 고야의 문(2층)과 남쪽 무리요의 문(1층)이다. 1층에는 플랑드르회화를 중심으로 루벤스의 “미의 세여신” 브르겔의 “죽음의 승리” 보쉬의 ‘쾌락의 정원’ 등 작품과 함께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등 검은 그림 시리즈가 잇다. 2층에는 스페인회화 중심으로 벨라스게스의 ”라스 메니나스9궁정 시녀들)“ 고야의 ”나체의 마야“”옷 입은 마야“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스페인의 3대 거장을 비롯하여 16-17세기 스페인 회화의 창조기에 활약한 화가들의 주옥같은 작품이 전시되어 관람객이 그림에 심취되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출처 : 백운대
글쓴이 : 백운대 원글보기
메모 : 백운대님의 마드리드